화성팔탄의 상여소리

화성지역을 대표하는 민요

팔탄면의 상여소리와 농요는 화성지역을 대표하는 민요로
1987년 민요를 중심으로 한 첫 조사가 이광규, 이소라 선생의 연구로 이루어졌다.
유래

화성시 팔탄면 구장리의 장례 의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운상과 무덤 조성과정에서 불려온 상여소리와 회다지소리이다. 1970년대 두레가 해체되며 농업노동요의 전승이 단절되었음에도 장례 의식요인 상여소리는 맥을 유지해왔다.

팔탄민요 중 상여소리와 회다지소리를 무형문화재 신청을 하며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되었으나 보유자인 박조원(1925생 남, 구장리 토박이)의 사망과 함께 단절되어 2008년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었다. 2015년 팔탄면 주민자치위원회가 지역의 향토문화유산 발굴사업을 진행하며 구장리의 상여소리와 민요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지하고 복원 활동을 진행하였고 현재 팔탄면 향토민요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전승 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발굴경위

팔탄면의 상여소리와 농요는 화성지역을 대표하는 민요로 1987년 민요를 중심으로 한 첫 조사가 이광규, 이소라 선생의 연구로 이루어졌다. 1989년 1991년에는 경기도 민속예술제와 전국단위 민속예술경연대회 등에 참가하였고 1993년 문화방송 민요대전 팀의 조사에 의해 고품질의 음원이 남게 되었다. 이에 상여소리와 회다지소리를 무형문화재 신청을 하며 1998년 무형문화재 지정조사가 이루어진 후 1999년 경기도 무형문화재(제27-2호)로 지정되었으나 그 후 보유자가 사망하며 전승되지 못하고 2008년 지정 해제되었다.

이후 2015년 팔탄면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지역의 향토문화유산 발굴사업을 진행하며 구장리 상여소리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지하고 복원 활동을 진행하였다. 현재 팔탄면 향토민요보존회를 중심으로 전승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공연 및 전통문화 교육활동 등 전승 보존을 위한 다양한 노력하고 있으며 화성팔탄민요(농요, 토목요)는 2022년 경기도 무형문화유산 제65호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지정에 포함되지 않은 상부소리(상여, 회다지소리)도 경기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특징
팔탄면의 장례 의식요는 현재 상여소리와 무덤다지는소리(회다지소리)가 주를 이룬다. 상여소리는 두 장단 메기고 “어호 어호 어거리 넘자 어허오” 두 장단 받는 소리와 한 장단 메기고 “오호 오호” 한 장단 받는 자진소리가 있다. 무덤 다지는 소리는 한 장단씩 메기고 받는 “에호리 달고”와 두 장단씩 메기고 받는 “어거리 넘자 달고”가 불린다.
놀이시기
마을에 장례가 있을 때마다 진행
구성 및 진행 과정
  • 발인제

    상여가 집을 떠나기 전 지내는 제로 상여와 상여꾼이 자리하고 앞에 병풍을 두르고 상을 차린다.
    상주들이 늘어서고 맏상주가 분향, 헌작하고 제관이 축문을 읽고 모두 곡을 하고 절을 한다.

  • 출상(상여소리 ‘어거리 넘자’)

    선소리꾼의 지시로 상여를 메고 출발을 한다. 명정, 만장, 공포, 상여, 상주, 조문객, 지게, 광주리 아낙 순으로 늘어서고 노제와 상여꾼을 위한 음식과 술 등을 가져가는 지게꾼, 마을 아악들이 따른다. 이때 선소리꾼이 상여소리를 선창하면 상여꾼들이 받는 소리를 부르며 간다.

  • 운상(상여소리 ‘어거리 넘자’, ‘어호’)

    상여소리를 부르며 장지를 향해 간다. 이때 상주와 망자의 지인들이 상여에 노잣돈을 꽂아주며 명을 빈다.
    가파른 길이 나오면 자진 상여소리를 부르며 힘을 내게 한다.

  • 장지 도착
지역에서의 가치

화성시 팔탄면은 전통적으로 뛰어난 소리꾼이 많았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민요에 대한 문화적 가치와 소중함을 소홀히 여겨왔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여러 차례 학자들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문화재 지정을 서두르지 않았고 늦은 시기에 상여소리와 회다지소리를 문화재로 인정받았으나 전승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서로 무관심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대처없이 보유자 사망으로 해지되고 말았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팔탄 구장리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해지 후 시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반성의 목소리와 회복의 의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다시 살려보자는 뜻을 가진 주민들이 모임을 만들고 자료를 수집하며 회원을 늘여 나가기 시작했다. 이처럼 주민들의 적극적인 의지로 향토민요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자발적인 노력으로 전승교육과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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